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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말 실직이후 알버타 내에서 이력서를 낼 곳은 거의 다 냈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몇달에 걸쳐 적극적인 잡 서치를 했지만 갈수록 떨어져 가는 원유값으로 인해 사람을 뽑는 곳은 거의 없었다.
4~5월이 되자 생활비가 줄어들며 앞이 암담해지기 시작한 가운데 한국에서 희미하게나마 희망이 솟아나기 시작했다. 알버타 --> 캐나다 --> 북미 --> 중동 --> 한국까지 범위를 넓혀 이력서를 300군데 이상 제출을 했으나 연락이 오는 곳은 고작 3~4군데, 그것도 진행이 지지분 하며 계속 시간 끌기만 하고 있는 상황에서 대우엔지니어링 출신으로 이테크 건설에서 일하고 있던 탁부장에게 연락이 닿았고, 당시 추진 중이던 중동 프로젝트에서 한 자리기 있어 인터뷰가 잡혔다. 그래서 한국으로 방문 인터뷰를 하게 되었고, 당시 역시 대우 출신으로 현대 로템에서 자리를 잡은 박대원부장에게도 연락이 되어 옛 대우 출신 계장부 모임에서 만나게 된것이 필리핀으로 연결이 되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후 인터뷰로 긴박한 8월 한달을 보내고 9월 초부터 한국에서 3개월 동안의 생활을 위해 가방 두개만 달랑 들고 아내와 먼 여정에 올랐다. 그리고 3개월후 잠시 캐나다 방문. 12월 긴긴 2년 반의 필리핀 장기 출장을 시작하게 되었다.
2016년 봄 현대로템이 필리핀 EEI 건설사와 합작으로 MRT-7 Project 수주했다.
영화 보면 결론 보여주고, 5 Years ago, Seoul…
이렇게 시작하자나.
2019년 필리핀을 도망나온 후, 캐나다에 도착해서 간만의 긴 휴식을 취하고 있었지.
그때 교회에 어떤 가족이 방문을 하셨는데, 필리핀에서 선교를 오랜기간 하시다가 잠시 안식년을 맞아 방문을 하셨는데, 지인의 소개로 우리 교회에 오게 된거였어.
당시 필리핀에 대한 기억은 나빴지만 그래도 같은 곳에서 살았다는 연대의식으로 다가가 인사를 하고 식사 초대를 해서 집에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지.
그러다가 아주 쇼킹한, 그동안 필리핀에서 서로 의문을 가지고 살았던 부분에 퍼즐이 맞추어 지면서,
아 그래서 그랬었구나, 그럼 내가 잘못한게 아니었네, 그러면 그렇지…
이런 식으로 실마리가 풀리기 시작해서, 그 분들 마음이 따사로운 봄볕에 눈 녹듯이 녹아들며,
평안한 안식년을 보내시고, 필리핀을 제대로 잘 정리하고 다른 곳으로 선교지를 옮기시게 된거지.
우린 우리대로, 그분 들을 통해서 더 소상한 내막을 알게되고, 그때 당시 필리핀 교회에서 있었던 여러가지 섭섭한 감정들 다 씻어내게 되었고…
자, 뜸은 그만 들이고…
본론으로.
필리핀은 오랜 스페인 식민지아래 국민 자체가 정신적, 물질적으로 노예화 되어있던 나라야.
원래, 남방 원주민 들은 게르은 본성에, 땅에서 스스로 자라는 식물, 과일이 풍성하니 북유럽의 추운 나라들 처럼 처절하고 극심하게 노력할 필요도 별로 없어 천성이 느린데 힘도 없어서, 화력으로 무장한 스페인의 점령군에게 그냥 땅을 고스란히 내주고 333년동안 통치를 당했던거야.
미국이 1898년 스페인과 전쟁을 치루고 이겨 필리핀을 빼았고 난후, 그 이전 스페인식 억압 통치 대신에 주민들을 교화, 교육시키는 방식으로 정책을 바꾸었지.
마치 일제가 1919 삼일절 이후 약간의 유화정책을 쓴것과 맥이 맞다고 봐.
필리핀과 한국은 그 유명한 가쓰라 태프트 조약에 따라 미국은 필리핀을, 일본은 한국을 점령하고 서로 묵인해주도록 한 쓰라린 서로의 역사를 공유하고 있지.
암튼, 지금은 필핀 역사시간이 아닌 관계로 이쯤하고..
그래서 미국이 유화정책의 일환으로 많은 선교사를 파송하게 되었고, 선교사들의 제일 걱정이 자녀들의 교육인데, 현지 학교에 보낼수 없고, 홈스쿨에 한계가 있어 MK School을 세우게 된거지.
그래서 마닐라 외각 한적한 산속에 Faith Academy를 세우게 되었지.
문제는, 한국 사람들의 그 지독한 자녀교육에 대한 열의가 도를 넘어서 시작이 되었어.
그 학교는 미국과 커리큘럼이 같아서 졸업을 하게 되면 미국 대학에 진학이 되는 특전이 있었고, 또한 한국 명문 대학게 들어갈 자격이 생기는 거야.
선교사 자녀의 경우 학비가 다른 사립에 아주 비해 저렴해서 많은 한국 사람들이 눈독을 들이고 있었는데, 문제는 선교사 자녀라는 자격 제한이 있었던 거야.
그러다 보니, 사심이 있는 한국 사람들이 교회를 차리기 시작했고, 실제로 목사 안수도 안받은 가짜 목사가 양산이 되고, 선교사로 인정을 받기위해 일종의 형식적인 목회를 시작한거지.
많은 목사들이, 가짜 목사들이 양산이 된거야.
그래서 그 학교 주변에 무려 200명도 넘는 한국 선교사들이 포진해 있어.
내가 다니던 교회 목사님을 포함해서.
이상한 생각이 들기 시작한건, 어느날 뜬금없이 다니던 교회 어느 집사부부를 선교사 파송식을 하는거야.
주말에 필리핀 현지 교회에서 성경공부를 가르친다는 거를 선교사 사역으로 인정하여, 정식으로 우리 교회 파송 선교사를 만들었어.
선교사 파송 증서도 발행해주고..
그리고 그 다음해 그 부부의 자녀가 그 학교에 입학을 하게 된거지. 烏飛梨落 ㅋㅋ
사단은 꼭 넌 되고, 난 왜 안되?? 에서 시작을 하는 거지.
그 교회에서 그 부부와 제일로 친했던 다른 여집사의 딸이 한살이 어렸는데, 자기도 선교사로 파송을 해달라고 조르기 시작한거야.
근데 그 분은 여행사를 하셔서 명분상 당장 선교사라고 칭하긴 어려운 상황이었던 거지.
그 당시 많은 부자격 자녀로 인해 학교에서는 조건을 강화해, 자격 심사가 까다로워지고있는 와중에, 다른 교인이 그럼 나는 한국에서 미용을 배워, 미용 선교사를 할테니 파송을 해달라고 떼를 쓰고, 난리를 치고, 싸우고, 교회를 나가고….
그 와중에 선교사 파송 받은 부부도 애 입학 후 교회를 떠나고. 목사님은 오리알 되고….
근데, 당시 점점 그 썩은 냄새가 학교 관계자들과의 마찰로 비화되고, 예를 들어 정확한 자격 심사를 통해 미자격자를 걸러내야 하는 학교측과, 대충 파견 선교사니 자격이 되니까 해달라는 우격다짐, 그리고 막상 들어와도 공부를 제대로 못해 졸업 성적도 되지않는 애들 어거지로 졸업을 시켜달라는 그 한국 선교사들의 생떼….
당시 앞에서 소개드린 김영철-양선나 선교사님들께서 바로 그 지긋지긋한 한국 가짜 선교사들을 심사하는 역할을 그 학교에서 하셨던 당사자셨고,
양 선교사님은 입학 심사관 – 자격조건, 성적 등등을 꼼꼼하게 심사해서 부적격자가 혜택을 받지 못하게 하는 일을 하셨는데, 그 깡패같은 가짜 목사들 (실제로 조폭 출신도 있었슴 ㅋㅋ) 자녀가 자격이 되지 않으면, 어거지쓰고, 협박하고, 욕설하고, 삿대질 하고, 사무실 엎고, 교장한테 음해 메일 보내고 하는 공격을 받으시며 몇년을 보내셔서 마음이 걸레가 되셨고…
그렇게 억지로 들어온 자녀가 학교에서 놀면서 탱자탱자 하다가 졸업실력이 안되 미국으로 못가게 되면, 다시 그 깡패 목사들이 학교에 찾아와 졸업 시켜달라고 생때 부리고, 협박하고, 욕설하고, 삿대질 하고, 사무실 엎고, 교장한테 음해 메일 보내고…. 그런 상황속에서 두 부부는 당신들께서 한국의 좋은 직장 다 바리고 헌신하겠다고 온것이 이꼴을 보려고 온 것인가?? 하는 강한 회의에 정신이 지칠대로 지쳐서 안식년을 캐나다에서 보내고 계셨던 거였고.
그래서 우리를 만나 퍼즐을 맞추게 되었고, 그래서 그랬었구나 하는 의문이 풀리게 되고, 그래서 다시 그 역겨운 한국 목사들 틈으로 돌아가는 대신에, 다른 사역지를 찾도록 결정하게 되었고, 그래서 카작스탄 MK School이 마침 연결이 되게 되었고… 이렇게 그 분들의 삷에 우리가 어떤 결정을 하는데 조그만 도움을 드리게 됨으로써 우리 가정과 끈끈한 연결이 시작된거 였지.
다시 필핀으로 돌아가서….
그분들과 달리 나의 아픔은 좀 다른곳에 있었지.
처음 교회에 등록을 하니 엄청 친절하게 잘해주더군.. 캐나다 사람이라고 부러워 하기도 하고. 그래서 반찬도 싸주고 그러더라.
교인이 30명 정도 되는 적은 교회 였는데, 목사님 빼고 나보다 나이 많으신 분이 겨우 두분 정도.
그중 안수집사 한분이 한국으로 돌아가시며 예배 인도 (시작기도, 교회 순서 인도 등 목사님 설교시작 전까지 사회를 보는거)를 시키시더라고. 꼬박 2년 반 (120주 정도)을 매주 시작기도 준비하고, 정결하게 마음 준비하고… 교회도 거의 못빠지고, 매번 일찍 가야하고, 대표기도자 빵꾸내면 메꾸기도 하고 등등, 작은 교회에서 거의 장로 역할을 2년 7개월을 했지.
결국은 목사님 뜻에 반대한다고 싸늘하게 대접받고 돌아왔지만..
교회가 작다보니 성가대, 예배인도, 재정부(헌금계수, 비용지출, 급여지급, 정산), 주일학교 보조(PPT 작성), 방송장비 수리, 현지 교회방문 성경공부 등등 별 오만 일에 다 관여를 해야했고…
오마이, 이리 봇물 터지듯 쏟아지는 군….
2017년 여름에 행사가 하나 큰게 있었어.
마닐라 지역세 사시는 선교사님들을 위로하는 2박3일 집회를 우리 교회가 주최하게 되었는데, 그때는 초기의 열정에, 그리고 위와 같은 사건을 당하기 전이어서 정말 열심히 일했어.
100명의 선교사를 초청해서 식사 준비, 호텔 준비, 선물 준비, 찬양 준비, 교회 단장등등을 겨우 장년이 10명 남짓한 교회의 전체 교인이 죽어라 열심히 해서 마지막 날 정말 뜨거운 박수를 받았지. 마지막날엔 내가 대표기도를 세상에 선교사 100명 앞에서 했는데, 어느 선교사님께서 교회 대표기도 듣다가 울어보기는 처음이라고 하시더라고 ㅋㅋ
암튼 그렇게 의미있게 큰 행사를 하고 나서, 다음해는 일을 더 크게 벌리시는 거야.
유명 관광지, 한국 같으면 제주도에 비싼 리조트를 잡아서 하자는 거였어.
그때 내가 재정을 맡으면서, 그 뻔한 재정 수입에, 목사님 차는 퍼져 차도 사드려야하고…정말 힘들고 빡빡한 예산에, 그냥 교회에서 해도 되는 것을 굳이 수백만원, 수천만원을 들여서 그곳에서 하신다고… 그래서 어긋장이 나기 시작하고, 점점 찬밥이 되어가고…
마지막 해는, 오마이 아예 해외에서 하겠다고 일을 벌이시는 거 있지? 결국 베트남까지 가서 일을 벌렸다네. 이후 교회는 산산이 조각 나서 교인 다 떠나고…
그렇게 목사님한테 충언하고, 받대하고 그러다 보니…사모님도 눈치를 주는거야.
교회에서 봉지커피 몇개 가져가는거 째려보고, 반찬은 커녕 내가 김치 한박스 사서 집 냉장고가 적어 교회 냉장고에 넣고 꺼내먹는것도 눈치주고.. 드럽더라.
그런 사람들 속에서 교회 안떠나고 2년 7개월 죽어라 봉사하고, 헌금내고, 시간 내고…
마지막 3달은 더 가관이 아닌게…
목사님께서 어느날 차로 한시간 반 거리에 있는 지역교회가 하나 있는데, 좀 도와줄수 있겠냐고…
처음엔 아예 성경공부 해주라는 얘기는 꺼내지도 않고, 그냥 슬쩍 돌려서… 자주 방문해서 교회 여러운 얘기 들어주고 뭐 그런 돌보는 역할이라고.
그래서 하겠노라고 했고, 같이 방문을 했는데, 그때서야 성경공부를 해주라고 말을 꺼내는거 있지. 그동안 사모님께서 해왔는데 시간이 잘 안 맞아서 내가 해주기를 원한다고.
그것도 필리핀 사람을, 영어로 성경공부를 해주라고??? 오마이…
그럼 나도 파송 받아 내 자녀(있다면) 그 학교에 보낼수 있겠네 ㅋㅋ 이런 생각이 들더라니까?
그래서 결국은 모두 12주 과정중 한주만 한국 가느라 빠지고, 11주를 매주 토요일 새벽에 점심 준비하고(김밥, 불고기 어떨때는 도넛 등등), 먼길 운전해서 성경 공부 해주고, 간식 사주고, 용돈도 주고….
그렇게 세달을 봉사를 했는데, 정말 기가 막히는 건, 교회 교인들에게 한마디도 광고를 안하는거야.
싸늘하게…
그렇다고 내 입으로 나 뭐 하네 하는 거 나대는것도 추잡하고..
결국은 사모님 개인일을 해주고 온거야.
하지만 결국 그 일을 통해서도 나를 훈련시키시고, 불쌍한 이웃 알게 하시고, 결국은 마지막날 다 같이 엉엉 울다시피 하면세 헤어지고,
그 둘중 아직도 페이스북을 통해서 소식 주고 받고…
마지막 월세 방 뺄때 보증금 남은거 교회에 안주고 그 현지교회 수리비로 돈을 주고 왔어.
그게 결국 목사님 마지막 꼭지를 돌려버린거지.
자기 손으로 줘야지 감히 집사가 자기가 관여하는 교회에게 돈을 준다고? 건방지게…
뭐 이런 분위기 웃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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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핀 현장 이야기는 너무 개인적인 신분이 많이 노출 되는 관계로, 별도 가입레벨을 조정한 이후 개별 공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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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에피소드….
어느 교회 장로님 한분이 너무 성실하시고, 무슨 일이 있어도 웃으시고,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불평 안하시고…
교회에서 누가 삿대질 하고 깽판 부려도 웃으시고, 용서하시고…
그래서 목사님께서 장로님한테 물어보셨대.
장로님, 어떻게 하면 그렇게 잘 참으시고 화를 안내시고 용서를 하실수 있나요?
저좀 가르쳐 주세요.
장노님께서 왈, 힘들게 고생하며 연애흘 하다가 어렵게 결혼을 해서 하객들 다 식사 마치고 잔금을 주려는데 부의금 맡았던 형이 안보이더래.
그 돈을 가지고 튄거야.
그래서 신용카드, 친구들 돈 다 빌려서 결혼식 비용 대고, 신촌 첫날 부터 빗쟁이가 됬느데, 그 형이 용서가 안되더래…..
근데 아무리 사람들이 나쁘게 해도 형보다는 안나쁘더래…
그래서 참을수 있다고…
“형보다는 나아” 이렇게 읖조리면 다 용서가 된데.
내가 아무리 힘든 사람을 만나도, 힘든 일이 생겨도 필리핀에서 만난 그 친구 패거리 보다는 안나쁘면 괞찬아.
이렇게 변했어.
내가 짐싸서 떠난후 한달후 화산이 터져 나라 전체가 몇달 마비됬고, 코로나로 전체 나라 셧다운 한지 일년 6개월째.
아직 사무실 제대로 안열고. 공사는 별로 진척 안되고, 기차는 3년째 창원에 묶여있고…
그 일이 있고 2년 반이 거의 다 지난 지난달(2021년 10월)에 열차 한 편성이 겨우 필리핀에 갔다고 온 나라가 난리났데.
근데 차량기지가 없어서 운행은 못하고 2년은 세워나야 한다는데…
그 프로젝트 내가 아직 있었다면 어찌 됬을찌 상상이 안가는 상황이네…
필리핀과 한국 3개월, 이렇게 2년 9개월의 삶이 내 새 삶에 준 영향력은 정말 컸고, 정말 두고 두고 되돌아 보게 될 것이고, 그래서, 정말 정리가 필요하게 되었다.
1) 필리핀 교회에서 있었던 은혜받은 일들, 황당했던 일들, 한인사회의 그 삐뚤어진 모습들...위선의 탈을 쓴 거짓 선교사들
2) 한국 회사원들의 실상. 영어수준, 대인관계, 그룹짓기, 편만들기, 돈만들기 ㅋ
3) 그리고 순수한 필리핀 사람들의 사람 냄새나는 이야기 들...
하지만 여기서는 2) 이야기를 잠시 보류한다.
너무 개인적인 공격으로 보이는 팩트가 너무 많다. 가입등급 등 조정이 가능하면 별도 포스팅을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