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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지니어링 업무에 잘 익숙하지 않은 사람을 위해 용어설명을 두개 하고 시작한다.
엔지니어링이나 건설회사의 업무는 일종의 프로젝트 오리엔티드 업무가 메인이고 이는 어느 특정 기간동안 팀을 구성했다가 해체를 반복하는 일로 제조업이나 서비스업처럼 일정한 업무를 지속, 반복적으로 하는 것과 다른, 계속 다른 형태의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마치고를 반복하게 된다.
예를 들어 새로 이리에 동양제과 공장을 건설한다고 하면, 먼저 영업팀이 견적팀과 같이 프로젝트 제안을 동양제과에게 해서 프로젝트를 수주하게 되고, 먼저 설계팀이 구성되어 기본설계, 상세설계를 통해 예산을 잡아나가고, 각종 인허가 관련 업무를 진행하고 최종 공사비가 결정이 되면 공사 자재를 구매하고, 각종 단종 하청업체(예를 들어 지붕공사, 배관공사, 전기공사 등등) 계약을 하고 시공 감독을 하고 시운전을 하고, 최종으로 동양제과에게 운영을 넘기는 사이클을 반복한다.
이때 이 프로젝트이 총 책임자를 PM 이라고 하는데 Project Manager로 해당 프로젝트의 가장 막강한 파워를 가지는 자리이다. PM 이 초기에는 설계담당 총괄을 겸하기도 하고 별도로 프로젝트만 관리하기도 하는데 이때 프로젝트의 가장 잡다하고 복잡한 업무를 맡는 일종 이PM의 오른팔 역할을 하는 PC라는 자리가 있다. Project Coordinator라고 불리기도 하고 Controller라고 불리기도 하는, 프로젝트의 조정자 역할이 있다.
보통 PM을 맡기전 몇번의 프로젝트PC를 수행하면서 경험을 쌓게 되는데, 9년차 동안 부서의 특성상 기계, 건축이 주로 PM을 맡고 우리 부서는 주로 계장, 컨트롤 분야를 담당하는 역할을 해서 PM을 많이 해보지 않았던 터였다가 유가공 공장이 우리부서의 주요 업무 분야가 되면서 (연세유업, 한국 야쿠르트, 축협, 서울우유 등) L부장께서 새로운 프로젝트의 PM을 맡게되었다. 바로 건국우유 음성공장 프로젝트였는데, 여기 내 인생 최대 쓰라린 스토리가 있다.
한국사람은 다 아시다 시피 건국대 축산과는 일종의 대학을 대표하는 유니크한 학과로써, 예를 들어 동국대 불교학과, 인하대 항공운항과, 아주대 불문과, 삼육대 두유학과, 광운대 전자과, 공주대 사범 등으로 우유 하면 건국이던 시절이 있었는데, 연세우유가 재단의 돈과 당시 연세대 동문이자 대우그룹의 회장이었던김우중 회장의 적극적은 지원으로 아산에 신선한 새 우유공장을 지었던 것이었다.
이에 자손심이 폭발한 건국우유 관계자들이 연세유업 공장을 수차례 방문을 하였고 당시 국내 유가공 공장에 최초로 도입한 중안감시시스템의 공급자였던 우리 부서를 접촉하게 되었다.
요즘은 흔하지만 1992년 당시 우유공장에 이런 시설은 없었다.
당시 공정거래에 대한 사회적인 우려로 공개 공정 입찰에 대한 시선이 많았던 시절에 당시 3대 엔지니어링 회사였던 대우, 현대, 삼성중 우리 회사가 유가공 공장에 대한 첫번째 경험자였고 그래서 건국우유에서 당사에게 일종의 입찰 자문역을 맡기게 되었다. 물론 공개 입찰시 타사와 동등한 입장에서 입찰을 해야하는 당연 절차가 있었지만 입찰 자문역을 통해 접할수 있는 정보는 우리 회사가 유리한 입장에 놓이게 되어 몇년에 걸쳐 혼신의 힘을 다해 입찰 서류 작성을 도왔다.
그리고 공개 입찰이 떴고 예상대로 3사의 경쟁이 시작 되었다.
이때 L 부장께서 당당히 이 프로젝트의 PM 으로 지명이 되었으며 나는 PC역할을 처음으로 (총괄 포지션으로는 처음 – 단종 계측제어 분야가 아닌) 맡게되었던 것이었다.
이는 입철 설계에 대한 전체 부서 – 건축, 토목, 환경, 기계, 배관, 전기, 계장, 외국 설계분, 인허가 포함- 에 대한 총괄 조정자의 역할이었으며, 참으로 부담이 크고 과도한 업무량이 필요하던 지위였다.
지금으로 환산하면 그 프로젝트의 예산이 거의 1조에 가까운 공사였다.
그런 중차대한 일을 맡으며 엔돌핀이 마구 뿜어져 나오는 6개월의 입찰 설계가 시작되었다.
프로젝트 입찰의 주요 제안서로 기본설계도면, 설계와 시공 계획서, 공정 계획서, 품질관리계획 등등 광대한 자료를 준비해야했으며, 제일 중요한 공사금액을 뽑기위해 내-외자재 견적, 공사 견적등을 또한 관리하고 통합하여 최종 간접비(보증보험, 이윤, 경비 등)를 합산하여 최종 입찰 금액을 결정해야 하는 업무를 포함하고 있었다.
입찰 마감이 다가오며 점점 해야할일 대비 남은 시간에 대한 중압감이 넘쳐났고 각 부서에서 작성한 도면의 리스트, 각종 서류의 통합, 공사비 내역서 정리등등을 거의 며칠 밤을 새면서 십수명의 직원들을 독려해가며, 밥사줘 가며, 새벽에 사우나 비용 챙겨줘가며 일을 마쳤다.
입찰 서류 마감일에 물경 7박스의 서류와 400여 장의 도면 두루마리를 차 트렁크게 가득 싣고 건국대학교 프로젝트 사무실에 1등으로 제출을 하고 입구 나무뒤에 숨어서 경쟁자의 서류 제출 상태를 감시 했다.
먼저 현대에서 서류를 제출했는데 박스로 3~4박스 분량으로 우리가 준비한 서류의 반 정도 분량이었다. 물론 서류의 양으로 입찰의 질을 논하기는 어려우나 우리가 준비를 많이 했다는 좋은 인상은 줄수있는 이점이 되기는 했다.
그리고 마감 시간에 마춰 헐레벌떡 삼상에서 서류를 제출 했는데, 놀랍게 박스 한개만 달랑 가지고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때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이건 해볼만 하다. 우리가 제일 열심히 준비를 했다. 돈만 크게 다른 회사보다 비싸지 않다면 기술 점수에서 우리가 유리하니 우리가 프로젝트를 딸수 있다는 강한 자신감이 생겼다.
몇주후 비공식적인 통로를 통해 우리가 기술 심사에서 1등을 했으며 공사비에서도 최저가로 거의 낙찰을 받을수 있을거 같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우리 사무실에서는 난리가 났다.
당시 우리 본부에서 수주한 프로젝트중 가장 큰 프로젝트가 프랑스 Longwy프로젝트였는데, 그건 물론 기계, 건축에서 PM을 한 경우였는데, 가장 포션이 적은 계측제어부에서 거의 프랑스 프로젝트에 버금가는 규모를 수주한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온 뉴스였고 앞으로 L 부장과 나의 진급은 따논 당상이었다.
하지만 운명은 그렇게 쉽게 우리 손아귀에서 장악되지는 않았다.
먼저 현대가 입찰팀을 상대로 강한 압박을 가하기 시작하여 우리 평가부분에 대한 이의를 제기하여 우리의 기술 점수를 깍아내기 시작해서 순위가 뒤바뀌기 시작했다. 현대 1등, 우리 2등으로. 이후 삼성의 놀라운 반격이(mainly lobby) 시작되어 몇 달간의 공방을 통해 결국 삼성 1등, 현대 2등, 우리 꼴지의 결과가 나오게되었다. 뒤늦게 로비력을 빌려 결과를 뒤집으려 했지만 한번 쎄게 박힌 삼성의 뿌리깊은 로비력은 결코 뒤집혀지지 않았다. 결국 통한의 눈물을 흘리며 몇날 며칠을 가슴을 치며 억울해 하며 안그래도 안티 삼성이었던 내가 더욱 삼성을 미워하게 되었던 것이엇던 것이엇다.
시간이 흐른후, 사실 그 프로젝트가 큰 어려움에 봉착을 하게 되었는데, 우유처리 설비가 상당부분 수입에 의존을 했기에 당시 1997년 발생한 IMF사태로 수입 환율의 급등이 프로젝트 진행에 큰 장애가 되었는데, 다행히 삼성같이 큰 기업이어 어려움을 잘 넘긴것으로 보이며 우리 회사가 대우 그룹에서 떨어져 나와 재정상태가 좋지않은 상태에서 그런 외환위기를 잘 넘겼을까, 그 프로젝트의 가장 핵심 담당자로써 너무 많은 스트레스에 건강을 해치지는 않았을까 하는 가정을 해본다. 아마 그래서 우리가 감당할수 없기때문에 프로젝트가 주어지지 않았을 것으로 보며, 한편 지금 캐나다에 살게된 가정 직접적인 원인으로 그 프로젝트 대신을 맡게된 원주 우편 집중국 프로젝트와 관련하여 캐나다 출장을 한 이후 이민을 결정한 계기가 되었기에, 결국 건국 우유 프로젝트는 사실상 운명적으로 내가 해야할 프로젝트는 아니었다고 결론이 그렇게 말한다. 그렇게 위로를 하며 살고 있다. 그런데 사실이었다는 것이 현재의 삶의 결과가 말해주고 있다.
이번 글을 쓰려고 다이어리를 폈다. 표지 안쪽에 그해 수행한 프로젝트를 한 페이지에 정리한 종이 한 장이 표지 안쪽 비닐 포켓에 끼워져있다.
이미 오래 지난 정보니 여기 올려도 무방하겠다.
⦁ 찬마루 샘물 괴산/문광공장 CMS 영업
⦁ 대천 방조제 수문제어 시스템 원격 제어 A/S, PLC 교육
⦁ 건국유업 음성공장 시공/설계 입찰
⦁ 구미 오리온 전기 HK Project
⦁ 대림 주상복합 세대별 공조기 제어기 제안
⦁ 동아대학교 부산 유가공 공장 제안
⦁ 연합철강 당진 고대공장 CMS 제안
⦁ 대한 스위스화학 울산 Solt/Deg Recovery 설비 제안
⦁ 국민일보 여의도 신사옥 SMS 제안
⦁ 수도권 신공항 (영종도) TMS 기본설계 제안
⦁ 대구 축산물 유통센터 신규 설비 제안
⦁ 순천 농수산물 유통센터 신규 설비 제안
⦁ 수원 천천지구 APT 자동제어 설비 시공 감리
⦁ 대우 중공업 중형엔진 시험실 설비 제안
⦁ Walbro Korea FPT Plant Card Key 설비 제안
⦁ 군포 정수장 5단게 수수시설 TM/TC 제안
⦁ 대동공업 거창 연구시설 증축공사 지원
⦁ 영종도 신공항 SCADA 설계 제안
⦁ 축협 중앙회 음성 도계장 설계 지원
⦁ 일진 알루미늄 아산공장 자동화 시운전 지원
⦁ 음성 CTIS MMIC Project 지원
⦁ 삼척 동양해운 FLY ASH 하역설비 설계
⦁ 장성 농축산물 유통센터 설계 용역
⦁ Orico-11 구미공장 설계
⦁ 오리온 전기 구미공장 PDP Project 전기,계장공사 지원
⦁ 대덕전자 시화공장 신축공사
⦁ 군산 대우자동차 제2공장 엔진연구동 설계
⦁ 캄보디아 국제공항 입찰서 지원
⦁ 동양제과 CNK Project
⦁ 서울우유 대전공장 설계 수주 지원
⦁ 중국 산동-대우 자동차 부품공장 청도공장 CMS
⦁ 연세유업 아산공장 개보수 공사
⦁ 롯데우유 전주공장 CMS 영업
⦁ 한국 아쿠르트 천안공장 CMS 추가공사
⦁ 중국 일기-대우 자동차 부품공장 연대공장 CMS
⦁ 중국 산동-대우 자동차 부품공장 위해공장 CMS
⦁ 신풍제약 베트남 공장 입찰
⦁ 영종도 신공항 수배전 설비SCADA 입찰 지원
⦁ 장성 도축장 냉장설비 CMS 입찰
⦁ 두원공조 엔진시험실 입찰
⦁ 롯데우유 임실 공장 입찰
⦁ 동양제과 청주공장 확장공사
⦁ 농어촌 진흥공사 사옥 입찰
물론 하루 이틀 일을 도와주거나 자료를 정리하는 정도의 짧은 일도 있었지만 일년 동안 내내 협력을 하거나 진행을 해야하는 일도 많았다. 그렇게 정말 정말 바쁜 박과장이었다. 프로젝트 이름을 보면 먹는거, 마시는거, 전자제품, 반도체, 철강, 공항, 쇠고기, 아파트, 공사용자재공장, 자동차부품, 제약등 우리나라 산업 전반에 걸쳐 많은 장르의 산업에서 일을 했던모양이다.
그렇게 바쁜 가운데에서도 건강상의 이상으로 일주일에 3~4번 마시던 술도 자제하고 해동검도를 시작하게되었는데, 여기 다시 27년을 뛰어넘어 2024년에 캐나다에서 다시 해동검도를 만나게 되는 이야기가 나중에 나오겠다.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 저녁 시간에 매일 수업이 있었으며 3월 17일에 시작하여 12월 22일 원주에 가기 전날까지:
📊 월별 출석률 및 전체 요약
월 출석 횟수 총 출석 가능일 출석률 (%)
3월 11 11 100%
4월 19 22 86.4%
5월 16 20 80%
6월 15 19 78.9%
7월 17 22 77.3%
8월 13 19 68.4%
9월 13 19 68.4%
10월 12 18 66.7%
11월 15 20 75%
12월 9 19 47.4%
합계 140 189 74.1%
이로 인해 몸무게를 83 키로에서 77키로로 6키로를 빼고난 후 정육점에 가서 6키로 상당의 고기와 비계가 섞인 덩어리를 하나 보여 달라고 했는데, 이를 보고는 엄청 놀라고 감동을 했다는 뒷이야기가 있다.
이번 해 다이어리는 이런 자잘한 기록 이외, 주말에 여행한 기록, 낚시 (횟수, 잡은 고기의 마리 수와 크기, 몇 시간 동안 낚시를 했는지, 미끼는 뭐를 썼는지 같은 정보도 기록이 되어있으며, 저수지의 약도와 앉은 자리표시 포함)출장 횟수, 부서원 주소록, 본부 조직도, 진급자 명단 같은 간지도 붙여져 있다.
주제성 발언: 통계를 본적은 없지만 드라마나 영화에서 나오는 주인공의 직업을 보면 재벌, 변호사, 의사, 디자이너, 작가가 아마 90%는 되지 않을까. 어디 감히 엔지니어가 주인공인 영화나 드라마 본적이 있는가? 아마 내머리속 지우개(노가다), 나의 아저씨(구조기술사), 그리고 가끔 나오는 인테리어 디자이너…
나의 요점은 왜 엔지니어는 영화나 드라마 주인공으로 매력이 없는걸까?
왜 아무도 그 직업엔 관심이 없는걸까?
여러분, 집과 아파트(사살 아파트 관련 일도 조금 있기는 했다), 상가건물 빼고는 여러분이 눈으로 보는 모든 인공구조물(다리, 고속도로, 고가도로, 지하철, 공항, 전철역, 지하철, 모든 공장, 댐, 수로, 항만, 부도시설 등등)은 우리 엔지어가 몽땅 설계하고 시공하고 시운전하고 감리를 한다는 것을 좀 알아줘야하지 않을까?
이것이 이번 글의 주제올시다.
한국 영화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주인공의 직업 (TOP 10)
순위 직업 특징 및 장르 대표 영화
1 형사/경찰 : 범죄 스릴러와 누아르에서 가장 많이 등장 범죄도시 시리즈(2017~), 추격자(2008), 내부자들(2015)
2 검사/변호사 : 법정 드라마와 사회 고발 영화에서 중심적 역할 변호인(2013), 더 킹(2017), 재심(2017)
3 기자/PD : 사회 비리를 고발하는 장르에서 중요한 역할 더 테러 라이브(2013), 1987(2017)
4 범죄자/조폭 : 조직 간의 갈등을 중심으로 한 누아르 장르 신세계(2013), 비열한 거리(2006)
5 공무원/정치인 : 정치 스릴러나 사회 고발 장르에서 주요 인물 남산의 부장들(2020), 특별시민(2017)
6 의사/의료진 : 의료 현장을 배경으로 한 영화에서 등장 살인자의 기억법(2017), 목포는 항구다(2004)
7 교사/교수 :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거나 드라마의 중심 완득이(2011), 말아톤(2005)
8 회사원/직장인 : 직장 내 인간관계나 경제 문제를 다루는 영화 미생 프리퀄(2013), 인턴(2015, 미국 영화)
9 자영업자/노동자 : 사회적 문제나 인간적 갈등을 중심으로 한 영화 택시운전사(2017), 소공녀(2017)
10 과학자/엔지니어 : 주로 SF나 재난 영화에서 등장 승리호(2021), 괴물(2006), 판도라(2016), 터널(2016), 나의 아저씨(2020)
1997년 말 한국을 덥친 IMF는 끔찍했다.
많은 사람들이 직장에서 쫗겨나고 일자리를 잃은 휴유증으로 말미암아 많은 이의 생계를 위협했고 생을 마감하게 했으며 많은 가장이 길바닥으로 내몰렸다.
그런 시점에서 직장을 유지한다는 것은 정말 상위 몇십%정도만 누릴수 있는 크나큰 혜택이었다. 급여가 1/3 정도가 날아갈지언정….
우편 집중국 프로제트도 지난 1989년 다이어리에서 캐나다로 이민을 오게 된 원인중 1번이었던 기록이 있고, 이 우편집중국에 대한 배경을 설명하는 것이 내 전체 삶에 있어 차지하는 비중이 크므로 지면을 할애해야겠다.
작년까지 수행하던 그 많은 40개(다이어리를 다시 읽어보니 리스트에 없는 프로젝트가 몇개 더 발견 되었다)가 넘는 프로젝트에 단 한개도 관련이 없었던 우편집중국 프로젝트는 시스템 자동화 부서와 우리 부서와의 통합을 통한 인원 재조정 과정에서 발생했다.
원주 우편 집중국의 감리로 현장 소장겸 기계담당자와 전기/자동화 담당이 각각 한명이 필요해서 계약직을 한분을 뽑았다가 IMF로 그분을 다시 내 보내게 되었고 내가 그 자리에 파견을 가게 되었다. 1997년 그 무수히 많던 프로젝트도 신규 프로젝트의 경우 모두 동결이 되다시피 해서 인력을 줄여야 할 상황에 인력 대신 급여를 줄이는 것으로 해고를 면하기는 했지만 갑작스러운 급여가 줄어든 상황에서 원주 파견은 그나마 매달 60여 만원에 해당하는 출장비를 융통할수 있는 배려에 따른 조정이었다. 당시 L 부장께 다시한번 감사의 마음을 전해본다.
우편집중국(郵便集中局)은 우편 물량과 운송 거리를 고려해 수용 권역을 설정하여, 권역별로 이동하는 우편물의 발송 및 도착 과정에서 기준에 따라 기계 시설 등을 이용하여 대량으로 일괄 처리하는 구 정보통신부 산하의 우정사업본부 소속의 우편물 처리 전담 기관이다.
당시 1990정도부터 우정 선진화의 일환으로 각 지역별로 20여군대 넘게 우편집중국을 세우게 되었는데 당시 현대와 대림엔지니어링이 주도적으로 설계/감리 업무에 대해 수주를 하고 있었고 효성, LG등이 건설을 주도하고 있었다. 뒤 늦게 대우엔지니어링이 설계/감리업무 수주에 뛰어들어 원주 우편 집중국을 처음으로 수주를 하였다. 이후 고양, 안양을 추가로 수주하였고 부산 우편 집중국은 내가 직접 나섰는데, 대우중공업이 턴키 시공을 받은 이후 영업을 통해서 자동화 공사 분야만 시공을 따내어 이민 오기전 회사에 조그만 기여를 하고 떠났던 기억이 있다. 당시 우편집중국 한국당 설계/감리 금액은 3억 정도였던데 비해 자동화 분야가 10억 정도였으므로 적은 기여는 아니었다.
현장에 파견을 받고 거주할 방을 구해서 돈을 줄여 보려고 최대한 싼곳을 찾았는데 원주시 외각 연세대 분교 가는 길에 있는 흥업이라는 곳의 한라공대 근처의 월세방 촌이 있었고 아주 저렴한 가격에 방을 구할 수 있었다.
식사 비용도 줄이기 위해 주말에 집에서 식빵을 직접 만들어 일주일치 아침 식사 대용으로 먹기도 했다.
현장 사무소에 도착해보니 건축 공사를 맡은 업체는 아주 영세한 업체였는데, 저가 수주와 재하청 이슈로 부실공사와 공사 중지등 많은 문제가 이미 발생한 상태에서 건축 감리와 건설 업체와의 관계도 썩 좋지 않았고, 기계담당이자 대우엔지니어링 현장 소장이었던 전직 대통령과 이름이 동일했던 김모 차장이 건축담당 소장, 건축 감리와 벌써 사이가 많이 틀어져있는 상태였다. 사무실에 복사기 하나도 없어서 매번 복사를 하기위해 건축공사 사무실에 들려야했고 돈을 한달에 10만원씩 주기로 했슴에도 웬지 눈치를 보며 들락거려야 할 정도로 분위기기 싸한 현장이었다.
우리 현장 소장과의 관계는 그렇게 좋은 인상을 가지고 시작을 했는데, 사실 김 소장의 경우 회사에서 큰 사고를 한번 친 이후에 파견된 일종의 “자학성 과도 경계 증후군”이 있어보엿다. 이 증상은 내가 그냥 지어낸 말로, 원주 수주 이후 두번째 입찰에서 회사의 직인을 찍지않은 입찰서를 투찰함에 넣음으로 인해 최저가로 수주를 했슴에도 유찰이 되어 큰 파문을 일으킨 장본이었다. (추후 책을 내게 되면 이내용은 삭제를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그랬는제 항상 눈을 두리번 거리며 경계하는 눈빛에 과도하게 원리원칙을 강조하고 말투와 행동이 항상 적대적인 면이 많았다. 영어는 상당히 잘하는 편이어서 이부분이 다른 사람이 넘지 못할 한가지 장점이었고 그래서 나름대로 기술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꼼꼼하게 문제를 잘 잡아나가고 있었다.
나는 당시 아직 이민에 대한 생각과 그렇게 영어에 대한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않아 당시 기준으로는 그냥 학교에서 배운 수준을 크게 넘지 못하고 있던 상태였다.
우편집중국의 주요 우편기계로는 서장 분류기, Flat(서류 봉투) 분류기, 패킷/소포 분류기, Overhead Conveyer(행낭 분류기)가 있었고 국산화 기계로 Tray Conveyor가 주요 설비였다.
이 프로젝트에서 내가 기여한 부분을 자랑삼아 이야기 하고자 한다.
상기 4개의 주요 분류기는 외자재로 서장은 일본의 NEC, Flat은 이탈리아의 Alsag, 패킷/소포는 덴마크의Krisplant, OHC는 독일의 Schierholz라는 회사가 각각 공급을 하고 설치는 효성, 내자재인 Tray Conveyer는 LG산전이 공급 및 설치를 하도록 계약이 되어있었다. 우리 회사는 일종의 정보통신부의 Agent로 설계 및 시공을 감리하는 업무였으므로 모든 자재 공급 도면의 검토와 승인을 맡은 일종의 작은 갑이었는데, Tray Conveyer의 핵심 컨트롤러인 PLC가 오래동안 Siemens로 독접적으로 사용중이었다. 이 부분을 국산화 하려고 LG에서 많은 노력을 했으나 제품의 안정성이 Siemens에 미치지 못한다는 이유로 LG PLC가 지속적으로 승인이 거부되고 있었다. 만약 이 부분이 국산화가 될 경우 단지 원주우편 집중국 한곳의 승인이 아니고 전체 우편 집중국의 공동적인 이슈로 현안이 적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었다. 젋은 박과장이 이때 총대를 맸는데, 일단 1991년 동양제과 공사 당시 밀가루와 설탕을 계량하던 시스템의 제어기가 Siemens PLC였는데 당시에도 그 기계로부터 7개의 정보를 받기 위해 수 년간 협상을 했으나 고압적이고 폐쇠적인 정보공유로 어렵게 문제가 해결되었던 경험이 있었다. 그로 인해 Siemens에 대한 강한 불신과 고압적인 자세, 고가의 추가 비용 청구 등을 고려했을 때 국산화를 하지 않을 경우 예상되는 무수히 많은 어려움이 예상이 되었다. 그래서 국산화의 장점을 내세운 제안서를 작성하여 어렵고 힘든 과정을 거치긴 했지만 결국에 정보통신부로부터 승인을 받아 돈으로 얼마나 많은 절감을 했는지는 계산하기 쉽지 않지만 적지 않은 외화 절감을 했다고 장담할 수 있다. LG 산전은 나에게 큰 상을 줘야 하지만 시간이 많이 흘러 이제 뒤늦게 징징 거리기는 싫다.
5월경에 현장 검수 출장이 잡혔다. 현대/대림/대우에서 중복되는 출장을 피하기 위해 담당을 정했는데 내가 Krisplant 의 소포/패킷 분류기 출장으로 잡혀서 덴마크로 출장을 가게 되었다. 일정은 총 9일 이어서 중간에 주말이 있어서 근처에 여행을 가기로 했는데, 일행은 모두 함부르그로 가기를 원했고 나는 노르웨이를 가고 싶었다. 굳이 단체로 움직일 필요가 없었으므로 나는 혼자 코펜하겐에서 기차를 타고 덴마크 최 상단의 도시인 Hirtshals로 가서 페리를 타고 노르웨이의 가장 남족 도시인 Kristiansand로 가기로 계획을 했다. 오슬로로 가려면 비행기가 아니면 너무 이동 시간이 길어 포기를 하고 노르웨이에 살짝 발을 내디디고 나서 다녀온 나라의 숫자를 한 개 올리기 위한 트릭이었다.
짧은 1박의 시간이었지만 먼 거리를 여러 번의 기차와 페리를 갈아타고 다녀온 나름 의미가 있는 여행이었다.
출장지는 오르후스 였다.
일정을 다 마치고 마지막 코펜하겐 여행은 보너스였다. 너무 이쁜 도시였던 기억이 남는다. 상세 여행 사진은 여행기에 올려본다.
1999년 3월 말부터 4월 초까지 다녀온 캐나다 오타와 출장은 이후 캐나다 이민을 결정하는 데 있어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당시 나는 원주 우편집중국 현장 파견을 마치고 복귀한 후, 고양과 안양 우편집중국 수주 후 실시 설계를 수행하는 과정에 있었다.
계약 조건상, 선진 우편집중국 기술 협의를 수행해야 했고, 이에 따라 캐나다 출장이 계획되었다.출장을 통해, 과거 대우엔지니어링 자동화사업부에서 포항제철과의 대형 물류 자동화 계약을 주도하며 유명했던 금춘섭 대표와 인연이 닿았다.
그는 이미 캐나다로 이민을 가 있었으며, 이번 기술 협의의 캐나다 측 에이전트로 연결되었다. 덕분에 오타와에 위치한 캐나다 우편공사(Canada Post)와 기술 자문 계약을 맺고 5일간의 협의를 진행할 수 있었다.
아래 사진은 그때 기술 협의를 마친 후 촬영한 것이다. 업무 일정을 마친 후, 금 대표가 거주하는 토론토로 이동하여 나이아가라 폭포, CN 타워 등 캐나다의 주요 관광지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저녁 식사에 초대받아 그의 집을 방문하면서 캐나다의 생활 환경에 대해 깊이 알게 되었다.
돌아와 아내와 긴 대화를 나눈 끝에, 우리는 캐나다 이민을 결심하게 되었다.
금 대표의 아내는 쇼핑몰에서 샌드위치 가게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초기 투자 비용이 약 5만 달러였고, 월 매출이 투자금의 10%인 5,000달러 수준이었다.
이는 생활을 유지하기에 충분한 수입이었고, 운영도 비교적 단순해 보였다.
영어 실력이 크게 요구되지 않는 점도 부담을 덜어주었다.
한국에서 보유한 재산을 정리하면 5만 달러 정도는 마련할 수 있을 것 같았고, 무엇보다도 캐나다의 삶이 인상적이었다.
내가 가장 매력을 느낀 부분은 여유로운 삶의 질, 과도한 업무 부담이 없는 환경, 깨끗한 도시, 그리고 경쟁이 치열하지 않은 사회 구조였다.
날씨는 한국보다 다소 불리했지만, 그 외의 장점들이 이를 충분히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 좋았다. 지금은 한국과 캐나다의 경제적 격차가 크지 않아 이민이 예전만큼 매력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시에는 GDP 기준으로 한국과 캐나다의 차이가 2~3배에 달해, 현재 한국과 동남아 국가들의 경제 격차만큼이나 큰 차이가 있었다.
금 대표의 집에서 뒷마당 바비큐 그릴로 구운 LA갈비를 먹으며, 집에서도 캠핑장에서 처럼 바비큐를 즐길 수 있다는 점이 새로웠다.
또한, 3개 이상의 방을 갖춘 2층 단독 주택이 약 12만 달러(당시 한화 약 1.5억 원)이라는 점도 놀라웠다.
홈디포(Home Depot)에 방문했을 때, 집의 거의 모든 부품을 직접 구입해 스스로 만들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다는 점도 신선한 충격이었다.
이 출장은 단순한 업무 출장 이상으로, 나의 인생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이 특별한 기회를 마련해 주신 박종섭 부장님께 다시 한번 깊이 감사드린다.
9월부터 시작한 이민 서류 작업에 관해서는 별도 한 쳅터를 만들어 글을 정리하고자 한다.
In this blog, I will share my thoughts and experiences on various topics related to technology, programming, and life. My aim is to provide useful insights and information that can help you in your personal and professional grow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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