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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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타 — 2026, 종이책 세 권

종이로 만든 책 세 권이 내 손에 쥐어졌다. 무척 기쁠 줄 알았는데, 담담했다

시작은 7월 중순이었다.

1988년부터 이민을 떠나기 전인 2000년까지, 13년의 이야기를 셋으로 나누어 아마존 킨들에 영어 전자책으로 올렸다.

1권은 1988~1991년, 2권은 1992~1996년, 3권은 1997~2000년이다.

책 세권.jpg

1권을 내고 주변에 알렸다.

반응은 둘이었다.

놀라움과 무관심.

놀라워하던 사람들도 정작 책 앞에서는 미적지근했다.

아마존을 쓰지 않는 사람에게 내 책은 사기 어려운 물건이었고,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은 예상보다 많았다.

사실 나도 그렇다.

뻔뻔하게 리뷰를 부탁해 보았지만, 아마존에서 물건을 자주 사지 않는 사람은 리뷰조차 올릴 수 없었다.

미화 1.99달러짜리 1권은 40개쯤 팔렸다. 2권은 19개, 3권은 4개였다.

권이 아니고 개라고 한것은 전자책이었기 때문이다.

2권과 3권은 알리는 일조차 거의 하지 않았으니 당연한 숫자다.

아래가 아마존의 포스팅이다.

https://a.co/d/0gXVmWue
Amazon Posting.jpg

그 다음이 종이책이었다.

아마존은 한글 책을 받아주지 않는다.

그래서 세 권을 하나로 묶고 한글 원고를 부록으로 붙였다.

책은 두꺼워졌고 값은 캐나다 달러로 13.99달러가 되었다.

가까운 사람들에게만 알려서 28권이 팔렸다. 그중 5권은 내가 샀다.

한글을 뺀 영어판도 따로 냈다.

7권이 팔렸다.


두 달째에 현타가 왔다.

예전 같으면 자비 출판은 최소 500권을 찍어야 했고, 편집비까지 수백만 원이 들었다.

이제는 AI의 도움과, 주문이 들어오면 그때 한 권씩 찍는 POD 덕분에 돈을 거의 들이지 않고 책을 만든다.

만드는 일은 쉬워졌는데 읽히는 일은 조금도 쉬워지지 않았다.

책을 알리려면 지인들을 꾸준히 괴롭혀야 하고, 계속 뻔뻔해야 하고, 가진 인맥과 SNS를 다 동원해야 한다. 나는 아는 사람이 많지도 않고 뻔뻔하지도 못하다.

오래 뜸했던 동문 모임에 책 소식을 올리던 순간은 떨떠름했다.

책이 저절로 조금씩 알려지리라는 얄팍한 기대는 금방 무너졌다.

가장 뜨거운 반응은 우리 가족을 아끼는 사람들에게서 왔다.

많지는 않았다.

기꺼이 책을 사고, 그 책을 들고 와서 사인을 해 달라고 했다.

그만큼 가깝다고 믿었는데 끝내 아무 말이 없는 사람도 있었다.

사겠다고 답하고 사지 않은 사람이 있었고, 사려다 안 되더라고 알려 준 사람이 있었다.

그리고 대부분은 아무 반응이 없었다.

이제 안다.

내 열정과 사람들의 반응은 서로 다른 세상에 있었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나 역시 남의 책 소식에 그렇게 답해 왔을 것이다.

아마존이 어렵다, 한국에서는 구하기 힘들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래서 9월 9일, 같은 내용을 한국의 POD 플랫폼 부크크에서 「그래도 나는 썼다」 제1권으로 냈다.

한국의 친척과 친구, 대학 동기, 옛 회사 동료들에게 알렸다.

35권쯤 팔렸고, 그중 15권은 내가 샀다.

친척 한 분이 6권을, 친구 하나가 5권을 사 주었다.

Bookk.jpg

그래서 다시 문을 두드린 곳이 브런치다.

두 번 만에 작가가 되었고, 이제 한 달이 조금 넘었다.

https://brunch.co.kr/@whereverilive

글 48편, 구독자 109명. 책에 담은 이야기는 「그래도 나는 썼다」 매거진에 2003년까지 올렸고, 사진과 여행, 기계를 분해한 이야기도 스무 편 남짓 올렸다.

그래도 책은 계속 낸다.

시리즈 4(2001~2008), 시리즈 5(2009~2015), 시리즈 6(2016~2019), 시리즈 7(2020~2026)을 아마존에 차례로 올리고, 이 넷을 묶어 From Seoul to the World Series 4–7을 낸다.

그리고 일곱 시리즈를 모두 합한 통합본을 올해 안에 낼 생각이다.

그것을 바탕으로 부크크에서 「그래도 나는 썼다」 통합본을 내면, 나의 자비 출판은 거기서 마무리된다.

책상 위의 세 권을 다시 본다.

영어판 표지의 이름은 W. I. Park이다.

Wherever I Live의 머리글자를 가져왔다. 어디에 살든, 나는 계속 쓴다.

글에 나온 책들
From Seoul to the World, Series 1–3 (아마존): https://a.co/d/09XCeX0K
그래도 나는 썼다 제1권 (부크크): https://bookk.co.kr/bookStore/6aa02d3a353fa6864af2cf7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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